하여가와 단심가 원문

포은 묘소는 용인 모현면에 있어 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하는 덕분에 한 달에도 두어 번 안내하고 해설도 하는 지역입니다. 마침 백낙평 님이 영어 원문을 어렵게 올리셨기에 추가로 한문으로 된 하여가와 단심사를 병행해서 올리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정몽주 선생이 낙마한 이성계의 병상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중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 曰,바로 그 유명한 하여가(何如歌)를 읊는다.

하여가(何如歌) -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此亦何如 彼亦何如)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城隍堂後垣 頹落亦何如)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려보세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백성들에게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떤 상관이겠습니까. 백성들에겐 오직 밥과 사.는 기쁨, 이거면 되는 것이지요. 저 만수산에 드렁칡이 얽혀있다 한들 그것을 탓하는 이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라고 정몽주에게 마지막 회유를 시도했다.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를 지어 답했다. 이미 기울어 가고 있던 고려이지만, 끝까지 굳은 결의를 지켜 두 왕조를 섬지기 않겠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단심가(丹心歌) -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든 없든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야 있으랴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

"나를 죽이고 죽여 일백 번을 죽여보시게. 백골이 다 썩어 나가고 몸뚱아리가 흙이 되어 먼지가 된다 한들 이 몸 안에 있었던 한 조각 군을 향한 붉은 마음은, 일편단심은 가지지 못할 것이네"라며 끝내 고려에 대한 충절을 꺾지 않았다.

결국 정몽주의 뜻을 꺾을 수 없음을 확인한 이방원은 집으로 돌아가는 정몽주를 살해하기 위해  자객을 보냈고, 정몽주는 선죽교(원명은 선지교) 위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하여가와 단심가는 영조4년(1728년)에 편찬된 고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화살표TOP